와이브로 얘기가 나온지 벌써 15년 정도 되었네요. 그리고 오늘 와이브로 철수에 관련된 기사가 전자신문에 났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좀 착잡한 기분이 들어 글을 씁니다. 와이브로가 LTE 대비 상용화에 앞섰던 것은 사실입니다. 와이브로와 LTE가 기술적으로 매우 유사해서 4세대 이동통신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을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요? 완전 실패작으로 결론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와이브로에 대해 우려하는 글들을 많이 쏟아냈어요. 이제 내 말대로 되었으니 "거봐라 내말 안듣더니 꼴좋다" "나는 예측율이 높은 점쟁이다"를 주장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엄청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했는가를 돌아보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다면 우린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1. 와이브로는 토종 기술이다.
- 와이브로는 토종 기술이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정부에서 와이브로에 관련된 많은 기술 기준들을 완화해 주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전 포스팅에서도 얘기한 바가 있듯이 와이브로는 와이맥스 표준에서 이동성 부분을 우리나라, 아니 정확하게는 삼성전자가 개발한 것이고 전체가 우리나라 기술이라고 주장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설사 전체가 순수 우리 기술 100%로 개발했다쳐도 무슨 토종 닭이나 흑돼지도 아니고 글로벌 시대에 토종이니까 살려야 한다는게 무슨 논리인지요? 아직도 한국형 알파고, 한국형 슈퍼컴퓨터 어쩌고 저쩌고 얘기가 나오는걸 보면 우린 아직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2. 와이브로가 망한 진짜 이유는?
- 요즘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식상하기까지 한 생태계 이슈가 가장 큽니다. 와이브로를 망가뜨린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기술을 개발한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초기에 와이브로 칩을 자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공급하지 않았어요. 시장을 선점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러다보니 많은 회사들이 와이브로 단말을 개발하려다가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했죠. 물론 나중에 시장이 안크니까 삼성전자가 다른 기업에도 베이스밴드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모바일 라우터(우리가 에그라고 부르는)를 중심으로 약간의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넷북이라는 노트북과 지금의 태블릿PC 중간 형태의 제품이 모바일 라우터와 결합된 상품으로 출시되면서 시장에 훈풍이 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생태계 조성의 골든타임은 이미 놓쳐버린 후였는데...
3. 와이브로가 망한 두 번째 이유는?
- 생태계 이슈와 일맥상통하긴 하지만 결국은 표준화에 실패한 기술입니다. 이렇게 얘기드리면 무슨 얘기냐? 와이브로는 분명히 IEEE802.16 계열의 기술이니까 표준 기술이다라고 주장하실 분들이 계시겠네요. 네 맞습니다. IEEE의 표준 기술이죠. 단지 이동통신에서는 그보다 더 강력한 3GPP가 있었고 그 단체와 경쟁에서 게임도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상용화에 앞서도 표준화에 실패하면 모든 걸 잃어버린다는 것을 보여준 극명한 사례입니다.
4. 와이브로가 망한 세 번째 이유는?
-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우리나라 산업과 삼성전자의 실적을 동일시 하는 경우를 보고 경악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총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워낙 크니까 그렇겠죠. 와이브로가 시작부터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였다면 지금과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초기에 서비스를 할 때 채널 대역폭을 8.75MHz로 규격화했는데 이 규격은 다른 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규격이었어요. 오로지 삼성전자와 포스데이터(망했음) 두 국내 회사만 시스템을 개발했죠. 이러다보니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삼성전자로 부터 비싼 가격에 시스템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어요. 해외산 제품들이 못들어오게 만들어서 삼성전자가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거죠. 처음에는 좋았겠죠. 수조원의 투자가 예상되는 시장에서 혼자 독식을 하니까 말이에요. 독점 시장에서의 높은 가격 때문에 와이브로는 기형적인 서비스 커버리지를 가지게 됩니다. 즉 서울 경기권과 6대 광역시에만 서비스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근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서울에 있을 때는 잘 되다가 지역을 넘어가면 못쓰는 서비스에 돈을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그 순간에도 3G 서비스는 HSPA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속도의 격차를 줄여나가게 됩니다.
5. 그래서 결론은?
- 이제 깨달을 때가 되었습니다. 시티폰도 그렇고 와이브로도 그렇고 지상파DMB도 그렇고 토종 기술 어쩌고 저쩌고 해서 개발하는거 다 실패했잖습니까?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르겠어요. 글로벌 시대에 중요한 것은 우군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 입니다.(이걸 좋은 말로 생태계라고 해요.) 토종 기술을 개발하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토종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글로벌에서 도입해야 할 부분은 도입하고 줄 것은 주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뜻입니다. 내수 시장의 규모가 택도 없이 작은데 괜히 무역장벽 만들어서 자유경쟁을 억압해서도 안됩니다. 무엇보다 기술의 혁신에만 함몰되어 구매자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는 고질병을 고쳤으면 좋겠네요.
5년전에 와이브로 주파수가 가치가 높으니 LTE TDD 방식으로 변경해서 이동통신 사업자의 트래픽 부하를 낮추는데 쓰는게 맞다는 글을 기고했다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모 회사 사장님 정부에 불려가고 저도 전화를 무지하게 받았었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토종기술 이제 그냥 잊고 될 서비스를 제대로 밀어줘야 합니다. 안그래도 주파수 모자라는데 LTE TDD로 하면 LTE는 물론 향후 5G 시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이동통신 종주국에서 변방국으로 변해가고 있는 시기에 안타까운 기사를 봐서 주저리주저리 푸념만 늘어 놓았네요. 그래도 이동통신 종사자 여러분들 모두 화이팅 하시길 빕니다. 좋은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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