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
IMT-2000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보셨을 겁니다. 원래 FPLMTS(Future Public Land Mobile Telephone Service)로 불리다가 발음하기가 힘들어 IMT-2000(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s 2000)으로 개명이 되었다는 것도 잘 아시죠? 여기서 2000은 2000MHz(2GHz)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고 2000년대에 시작될 것이라는 상징적인 뜻을 담고 있답니다.
그런데 IMT-2000의 출생 배경을 한번 알아보면 이게 좀 웃깁니다. 2세대 디지털 이동전화 시장이 각국별로 표준이 서로 상이해서 호환성이 없었습니다. 유럽에서는 GSM, 북미에서는 TDMA, CDMA, 일본은 PDC, 우리나라는 CDMA 등등... 모두 사용하는 시스템이 달라 자국에서 사용하던 핸드폰을 외국에 출장을 갈 때나 여행을 갈 때는 전혀 사용할 수가 없었죠... 물론 유럽은 GSM으로 통일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러한 불편이 덜한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의 기술에 전혀 뒤지지는 않았지만 표준화 전쟁에서 완전히 밀려버려서 자국의 기술을 해외에 수출할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합니다. 북미나 남미, 아시아 지역에서는 미국에 밀려서 장비를 팔아먹지 못했고 유럽에는 노키아나 에릭슨 등 빵빵한 GSM 업체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했지요... 일본은 이빨을 갈았을 겁니다. 다음 세대 통신 시장에서 두고보자구요... 그래서 일본의 ARIB란 조직에서 IMT-2000의 구현기술로 WCDMA를 제일 먼저 제안하게 됩니다.
그럼 유럽은 왜 WCDMA로 갔냐구요? GSM이 로밍에 유리한 기술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동전화의 사용 추세가 Data쪽으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에서 CDMA보다 Data 통신에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다는 점이 위기감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다행히 비동기식이라 미국의 GPS를 사용하지 않으니 미국의 군사 위성에 자국의 통신시장을 종속시키는 일을 할 필요도 없었구요... 무선데이터 통신에 적합하고 GPS를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일본이 제안해주니 유럽으로서는 미소를 짓지 않을수 없었겠죠... 이 기회에 일본과 연합해서 미국의 루슨트나 모토롤라 등을 아예 몰아내 버리자는 생각을 했겠죠...
그냥 외부적인 요인만 보면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IMT-2000이 탄생한것 같지만 실제로 이건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열강들의 입장 때문에 탄생한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에릭슨이나 노키아 등은 GSM 장비를 우리나라에 한 대도 팔아먹지 못했습니다. 땅덩어리는 작지만 미친 시장이라 불릴 만큼 시장 잠재력이 큰 시장에 발한번 못뻗었다는 사실에 내심 자존심이 상했겠죠... 미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CDMA라는 우수한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에는 한 대도 팔아먹지 못하고 우리나라나 싱가폴, 필리핀 등 작은 나라만 찝적대려니 성에 차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기술로 통일이 되면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오판(?)을 하게 된 겁니다. 근데 그까지는 유럽과 미국이 의견이 통했는데 둘다 자기 나라 기술 위주로 하자고 박터지게 싸우다 보니 결국은 단일 기술 표준은 물건너 가게 된겁니다.
또하나 덧붙인다면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신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 탄생한 것이 IMT-2000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극빈국을 빼고는 이동전화가 이미 시장 포화 상태를 보이고 있었고 신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미끼로 IMT-2000이 추진되었던 거죠... 소비자들이 누가 해외에서도 사용하게 해달라고 떼를 쓴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더빨리 전송하게 해달라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클레임을 제기한 적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건 순전히 사업자들이 돈을 더 벌려고 쇼를 벌이는 거죠... IMT-2000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제시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들 때문입니다. 즉, IMT-2000의 원래 목적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형적인 기술 표준 위에서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장이 아닌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이라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거죠.
IMT-2000의 원래 개념은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주파수 대역과 동일한 기술의 사용하여 하나의 이동전화망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미국, 유럽, 일본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결국 동일한 주파수 대역과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는 이동전화 기술은 "4세대"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더 웃깁니다. 정통부의 입장 변화를 한번 살펴볼까요? 첨에는 "사업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5개(당시에는 SK텔레콤, 신세기이동통신, 한솔PCS, KTF, LG텔레콤 등 5개 사업자가 있었습니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모두 비동기식 WCDMA를 주장하자 "업체의 자율적인 조정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사업자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1동 2비 또는 2비 1동" 등 희안한 용어들을 만들어 내며 슬슬 시장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정통부 장관이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동기식 IMT-2000 사업자는 하나 이상 반드시 선정하겠다." 라구 했습니다. 정말 뻔뻔스럽더군요...
저는 정통부 장관의 입장 변화를 보면서 화도 났지만 조금 서글퍼 지더군요... 정통부 사람들도 개입하기 싫지만 미국의 통상 압력을 이겨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도 어쩔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시장이 모두 비동기식으로 간다면 미국의 퀄컴은 우리나라에 팔아먹을 제품이 확 줄어들어 버리죠... 때마침 클린턴 이후에 비교적 강경 노선을 표방하는 부시(우리집 개이름 이랍니다. ㅋㅋㅋ...)가 정권을 잡으면서 우리나라는 더더욱 미국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결국은 LG 텔레콤을 비동기식 IMT-2000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시키는 초강수를 두게 됩니다. 어허 통재라... 미국의 입장에 따라 우리나라 기간망 기술이 좌지우지 되다니...
어쨌든 시장은 양분되었습니다. 일본과 유럽의 WCDMA와 미국의 cdma2000으로요...
용어가 많이 헷갈리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다시한번 정리를 해봅니다.
IMT-2000을 구현하는 기술에는 ITU 제안된 기준으로 5개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중 WCDMA(Wideband CDMA)와 cdma2000이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죠. 그럼 나머지 세개는 뭐냐구요? 중국에서 제안된 TD-SCDMA라는 기술이 있고 DECT 진영에서 제안된 것도 있고 북미 TDMA 진영에서 제안된 것도 있으나 Minor한 기술들이라 그리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WCDMA는 비동기식이라고 부르고 cdma2000은 동기식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GPS를 사용해서 기지국간의 동기를 맞추냐(동기식) 맞추지 않느냐(비동기식)로 구분되는 거죠. 쉽게 말씀드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 GPS를 사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기술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이 나게 됩니다.
이걸로 용어는 끝났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cdma2000이란 놈이 발전 단계상 cdma2000 1x란 놈도 있고 cdma2000 3x란 놈도 있습니다. 우리가 얘기하는 IS-95C가 바로 cdma2000 1x라고 보시면 됩니다. IS-95C라는 용어보다는 cdma2000 1x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이며 국제적으로는 IS-2000으로도 불립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cdma2000은 다시 진화하여 cdma2000 EV-DO라는 기술 및 EV-DV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EV-DO는 전세계 CDMA 사업자들이 많이 구현한 망인데 EV-DV는 아무도 채용하려 하는 사람이 없어 사장되었습니다. EV-DO는 HDR(High Data Rate)을 지원하지만 음성 통신은 지원하지 않는데, EV-DV는 음성과 데이터 통신을 모두 지원합니다. 그러면 왜 EV-DV가 사장되었을까요? 사업자들은 고립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쓰는데 자기만 그 기술을 쓴다면 단말기를 개발하는데도 힘들 것이고 로밍을 할 때도 불리하니까요. EV-DO와 EV-DV 이후에도 cdma2000 3x라는 기술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WCDMA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좀 복잡하죠? 그래도 용어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신문 기사를 읽으시는데 불편은 없으실 겁니다. 이제 강의는 두 번 정도 더할 예정입니다. 남은 두 번의 강의는 원초적인 궁금증에 대해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